2018년 12월 30일 일요일

Hangover


대학 입학후 기숙사로 짐을 옮기면서 아버지가 내게 당부하신 말이 있다.

남자는 술과 여자를 조심해야 된다고..
특히 기숙사 생활하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답시고 진탕 술 퍼먹고, 바지 속에 있는 물건 간수 못하면 인생 망가지는건 한 순간이라고 강조를 하셨다. 나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드디어 대학까지 왔는데 밍숭맹숭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은 당연히 없었다.

기숙사들끼리 합쳐서 연 신입생 환영회. 정말 영화에서나 보던대로 쿵쾅거리는 음악에 온갖 술이 끝도 없이 쌓여있었고, 다들 어디 있다가 나타난건지 낮에는 보이지 않던 쭉쭉빵빵한 여자애들이 잔뜩 몰려와 2층짜리 기숙사 안은 그야말로 광란과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나도 분위기에 취해 누군지도 모르고 건내주는 술을 넙죽넙죽 마셨다. 술기운에 용감해진 탓일까? 평소엔 말도 못붙힐 여자들과 얼싸안고 몸도 부비고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다. 하지만 술이 과했던 것인지 어떤 장난끼 가득한 얼굴의 괴짜녀석이 준 술을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 마시고는 곧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나는 타는듯한 갈증에 겨우 몸을 추스리고 일어났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왔다.
내 방 침대까지 가지도 못하고 기절했는지 정신을 차린 곳은 주방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다 되는대로 반쯤 남아있는 술병을 집어들고 목을 축였다.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물이라도 마실 겸, 냉장고로 다가가는데 냉장고 문에 영 낯선 실루엣이 비쳐 보였다.


'오.. 마이... ㄱ..'

당혹감에 한 발 물러나자 같이 한 걸음 뒤로 멀어지는 여자.

‘남자는 자고로 술과 여자를 조심해야 돼. X대가리 잘못 놀리면 훅가는게 남자 인생이야.’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아버지가 했던 말이 오버랩되었다.

보아하니 확실히 남자로서의 인생은 작살난 듯이 보였다.
다행이라면, 앞으로 더이상 'X대가리' 잘못 놀릴 일은 없다는 점일까?

'하 이제 어떡해야 한담…'

조막만한 티셔츠를 꽉 채우고 있는 젖가슴 만큼이나 답답한 기분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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